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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회때는 보드때문에 모바일과제를 지원했지만
이번 대회땐 지능형 휴머노이드를 지원할예정
안그래도 회사일이 많이 바쁜데 과연 시거할 시간이 날지는 의문...


자세한 사항은 eswcont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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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iPhone은 WM용 Device Driver를 제공하지 않을테고 데이터시트가 있는것고 아닐텐데...
게다가 두가지 OS를 택해쓴다는건 부트로더도 수정하거나 직접 만든걸테고
초반 OS 선택이 GUI 환경인걸 봐서는 펌웨어 딴에서 프레임버퍼를 제어했다는 얘긴데...

글구 부트 캠프 어쩌고 하는데 설마 데스크탑용 부트캠프를 포팅한다는건
절대 Never 내상식으론 말이 안되는 얘기인데..

왠지 Fake같기도 하고....

어찌되었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수 없다
나이도 어랴보이는데...

난 도데대 저나이에 뭘 하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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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양궁계 극심한 견제 속에서도 변함없는 챔피언

 

지금 한국은 세계 양궁계에서 양궁 발전을 저해하는 국가로 찍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경기방식을 수시로 바꾸기도 합니다.

 

가장 난제는 장비입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세계 양궁장비는 남자 선수의 경우 미제, 여자 선수의 경우 일제로 양분됐습니다. 그러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1년 앞두고 미국이 장난을 쳤습니다. ‘어떻게 저런 활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도 깜짝 놀랄 만큼 획기적인 신제품을 미국의 한 회사가 만들었는데, 미국이 그 회사가 한국에는 제품을 팔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막아버렸습니다. 우리 양궁협회에서 그 제품을 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살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미국 본사에까지 찾아가 올림픽에 쓸 활 4대만 달라고 통사정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우리 선수들은 애틀랜타올림픽 단체전에서 접전 끝에 1점 차이로 미국에 금메달을 내줬습니다. 개인전도 미국 선수에게 져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여자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 2개, 남자개인전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의 성적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신문마다 ‘한국 양궁 빨간불!’ 이렇게 큰 글씨로 1면 톱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때 저희는 일주일간 정말 처참하게 당했습니다. 한국 양궁이 추락한 이유가 뭐냐, 지도자들이 세계적인 흐름도 읽지 못하고 우리 선수들만 구닥다리 활을 갖고 출전했더라, 훈련도 주먹구구식이다, 이미 실패가 예견됐다…. 그렇게 무능한 지도자로 매도당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외국에서는 한국이 양궁 발전을 저해하는 나라입니다. 예선을 치르면 우리가 1, 2, 3, 4등을 싹쓸이합니다. 시드 배정에서 우리 선수들이 A, B, C, D조에 한 명씩 배정돼 총 128명이 예선을 치르면 마지막 4강전에 남는 게 또 우리 선수들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려버린다는 겁니다. 양궁 저변 확대에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이처럼 중요한 순간마다 다른 나라에서 장비로 장난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생각해낸 게 바로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산입니다. 에베레스트를 인류 최초로 등정한 사람은 뉴질랜드의 힐러리 경(卿)입니다. 그는 1953년 정상 정복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고(故) 고상돈 씨인데, 힐러리 경이 성공한 뒤 24년 만인 77년 세계에서 58번째로 정상 정복에 성공했습니다. 24년 동안 58번째라면 1년에 약 2명꼴로 성공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2007년에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답은 저도 모릅니다.(좌중 웃음) 세계산악연맹의 2004년 집계에 따르면, 1년간 무려 330명이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2005~2006년부터는 집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아예 그 수를 세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방식 변화 예견하고 새 훈련법 끊임없이 개발

 

그렇다면 과거 24년간 1년에 2명꼴에 불과하던 정상 정복자가 왜 이렇게 늘어났을까요? 첫 번째 답은 장비의 과학화입니다. 끊임없이 최첨단의 혁신 장비들이 개발돼 나왔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발상의 전환입니다. 힐러리 경이나 고상돈 씨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하던 시절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해발 2000m 고지에 베이스캠프를 정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정상까지 엄청난 고난을 극복해가며 등정을 시도했던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베이스캠프를 해발 6700m 지점에 만들고 모든 장비를 그곳에 갖다놓은 뒤 정상 정복을 시도합니다. 2000m만 올라갔다 오면 끝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어렵다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양궁도 산악인들의 이런 발상의 전환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훈련방법을 개발해 극비리에 시행하면, 외국 지도자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아내 벤치마킹합니다. 5개월쯤 지나면 우리보다 더 발전된 방법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 5개월간 우리는 전보다 새로운 것을 개발해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정상에 서길 포기해야 합니다.

 

저는 양궁 지도자들에게 다음의 5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최소한 1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고 국내외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통찰력입니다. 일례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직후 양궁 지도자들에게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경기방식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다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수백 가지 답이 나왔는데 그것들을 압축해보니 결국 네 가지 정도로 정리됐습니다.

 

양궁 대표선수단은 이 네 가지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훈련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베이징올림픽 8개월을 앞둔 지난해 12월 세계양궁연맹에서 베이징올림픽 경기방식을 발표했는데, 우리가 예측했던 네 가지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습니다. 외국선수들은 8개월 동안 바뀐 경기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려야 하지만, 우리는 4년 전부터 베이징올림픽의 경기방식을 준비해온 것입니다. 바로 이런 통찰력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창의력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양궁 훈련과 관련된 좋은 소재들이 널려 있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만 바꾸면 좋은 훈련 소재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반드시 따라 배우자고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두바이의 최고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입니다. 대한양궁협회 세미나가 열릴 때마다 우리는 늘 이 얘기로 시작합니다. 보세요, 지금 두바이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전 세계 타워크레인의 25%가 두바이에 있다고 합니다. VVIP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7성급 호텔을 최초로 만들고, 버즈 두바이에 800m 초고층 건물을 세우고, 팜아일랜드에 인공섬을 만들고, 하이드로폴리스라는 수중 호텔도 짓고…. 셰이크 모하메드가 말했습니다. “기획과 전략의 원천은 상상력과 창의력”이라고. 이 상상력과 창의력은 곧 생산력이자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입니다.

 

우리 양궁도 끊임없이 새로운 훈련방식을 개발해내려 합니다. 다른 종목에선 “양궁은 이벤트 훈련을 많이 한다”고들 말하지만 결코 이벤트가 아닙니다. 결정적 순간에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정신훈련, 팀워크 훈련 등 훈련방법마다 다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훈련방법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상상력, 창의력입니다.

 

통찰력·창의력·글로벌 능력·조직 적응력 그리고 열정

 

셋째는 글로벌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언어입니다. 영어는 기본이고 제2, 3 외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경기방식이 왜 자꾸 한국양궁에 불리하게 바뀌는 걸까요. 세계양궁연맹 집행위원이 33명인데, 주로 유럽 출신입니다. 이들이 경기방식을 바꾸다 보니 한국 선수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한양궁협회도 10여 년 전부터 어학연수를 1년에 두세 명씩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글로벌 능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유치하게 됐거든요. 이 대회 이후 집행위원 선임투표가 있는데, 이때 한국 양궁 지도자들을 집행위원회에 넣을 계획입니다.

 

넷째는 조직생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즉 엄격한 도덕성, 신뢰, 성실성입니다.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변화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 역량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인간 한계를 넘나드는 극한상황을 경험하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지도자의 리더십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리더십은 어디서 나올까요? 제가 20년 넘게 선수들을 지도해보니 첫째는 인격, 둘째는 실력, 셋째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헌신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리더십의 3대 키워드입니다.

 

40여 년 전 양궁이 국내에 도입되던 당시의 100대 기업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2개뿐입니다. 나머지 88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무한경쟁 시대에는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능력을 어떻게 극대화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점은 각자의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열정입니다. 열정 없이는 어떤 위대한 비전, 거대한 꿈도 잉태될 수 없습니다.

 

매일 새벽 5시 반에 훈련이 시작되면 저녁 8시에 끝납니다. 2시간 동안 자유시간을 가진 후 밤 10시에 소등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여러분, 인간 한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숨이 깔딱 넘어갈 것 같은 느낌,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 그런 한계상황을 하루에 두세 번씩 넘기고 저녁 8시 숙소에 돌아오면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듭니다.

 

그런데요, 2시간의 자유시간 동안 옆에서 TV를 보던 동료가 조용히 밖으로 나갑니다. 10분, 20분이 지나도 안 돌아오면 방에 있던 친구도 덩달아 나갑니다. 그러다 옆방 동료가 방에 와보면 아무도 없잖아요. 그럼 그 동료도 나갑니다. 이렇게 빠져나가다 보면 밤 11시에도 숙소에는 선수가 한 명도 없습니다. “이 녀석들, 또” 하면서 훈련장에 올라가보면 전원이 그 시간에 불 켜놓고 야간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수들은 엄청난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뜨거운 열정이 없다면 이런 경쟁에서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습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과 중국의 여자양궁 단체 결승전 때 일입니다. 중국 선수들이 다 쏘고 한국 박성현 선수가 마지막 한 발을 남겨놓은 상태였습니다. 박 선수가 10점 만점을 쏘면 우리가 우승이고, 9점을 쏘면 중국과 동점으로 재경기, 8점을 쏘면 우리가 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선수들이 활을 쏘고 들어올 때마다 “잘했어”라고 말하고 하이파이브를 ‘탁’ 하면 물이 튑니다.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당시 박 선수가 쏠 준비를 할 때 중국 선수들이 방해하려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이단옆차기를 날리고 싶을 정도로 중국 선수들이 미웠죠. 그런데 그 순간 박 선수의 눈빛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 초긴장의 순간에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타깃을 바라보는 카리스마가 대단했거든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10점을 쏘고 나서 말 그대로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가 박 선수에게 “그 마지막 순간, 마음상태가 어땠느냐”고 물었습니다. 박 선수의 첫마디가 “죽는 줄 알았어요”였습니다. 겉으로 그처럼 늠름해 보였지만 속으론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는 겁니다. 활을 쏴야 하는 40초 동안 고국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부모님,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니 제대로 서 있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뛰더라는 겁니다. 그러다 문득 지난 4년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때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더라는 거예요. 그렇게 바로 쏴버린 활이 10점 과녁에 들어갔던 겁니다.

 

바로 그거였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박 선수가 아닌 다른 어떤 한국 선수가 거기에 서 있었더라도 10점 과녁을 꿰뚫을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결정적 순간에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가 상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가정해 끊임없이 적응훈련을 하며 대비했습니다.

 

북파공작원 훈련장에서 선수들 기절 직전까지

 

어머니가 열 달 산고(産苦)를 거쳐 아이를 낳듯, 우리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도 열 달간 열 번의 대회를 치러 선발됩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선발전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 자격은 2007년 남녀 랭킹 100위까지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 100등 안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무척 치열합니다. 보통 한 달에 한두 번씩 전국대회가 열리는데, 여기서 2주일만 훈련을 소홀히 해도 바로 100등 밖으로 밀립니다. 국내에서 남녀 랭킹 80등 정도 하면 세계 랭킹 5위 안에 듭니다. 이런 선수들이 100명씩 모여 열 달간 열 번의 대회를 치르는 겁니다.

 

그 열 번의 대회가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지는 것도 아닙니다. 1차전은 체력이 좋은 선수가 기록이 잘 나오도록 대회 방식을 만들어놨습니다. 2차전은 정신력이 뛰어난 선수를 가려내기 위한 방식입니다. 11월 강원도에서 대회를 치르는데, 선수들은 닷새간 얇은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밖에서 경기를 합니다. 11월의 강원도는 춥습니다. 비라도 오면 손가락이 곱아 감각조차 없어집니다. 한마디로 정신력 싸움인 겁니다.

 

3차전은 담력, 4차전은 집중력, 5차전은 근성, 6차전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 이런 식으로 대회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치릅니다. 7차전은 최종 8명에서 4명이 남는 대회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한 발 한 발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를 잘 극복하는 선수가 좋은 점수를 받도록 경기방식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7차전이 끝나면 100명에서 남녀 각 4명이 남습니다. 이 선수들이 국내 대회 한 번, 국제대회 두 번을 더 치릅니다. 국내 대회에서는 잘하는데 국제대회에만 나가면 헤매는 선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나머지 한 명을 걸러내면 최종적으로 남녀 각 3명이 올림픽 대표선수가 됩니다.

 

그런데 환경 변화에 적응력이 뛰어난 선수를 어떻게 뽑는지 궁금하시죠? 간단합니다. 7월에 대회를 치르는데, 먼저 기상청에 문의해 태풍이 올라오는 날짜를 뽑아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자료를 통해 태풍이 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날짜를 넣어 일정을 잡습니다. 그럼 대회가 열리는 닷새간 무조건 하루는 걸리게 돼 있거든요.(좌중 웃음)

 

지난해 대회 때 누구라고 하면 다 알 정도의 간판급 스타선수가 있었습니다. 그 선수가 시위를 당기기 위해 섰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물은 발목까지 차오르고…. 이럴 때 활을 쏠 수 있겠습니까? 조준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제한시간은 흘러갑니다. 이때의 갈등은 말도 못하죠. 그러다 선수가 순간적으로 바람이 잦아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쐈거든요. 한데 바로 그 순간 ‘빠방’ 하면서 천둥이 쳤고, 그 선수가 깜짝 놀라 0점을 쏴버리고 말았습니다. 올림픽 2관왕에 세계선수권 2관왕, 아시안게임 2관왕. 누가 봐도 세계적인 스타인데 그 한 발 때문에 국가대표에서 탈락했습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원칙을 지키는 게 옳습니다. 그 덕에 고등학교 1학년의 어린 선수가 여자 4명이 남는 단계까지 올라왔습니다. 무명 선수도, 나이 어린 선수도 열심히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셈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어느 선수라도 ‘그 자리에 서면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많은 훈련을 합니다. 양궁팀이 공수특전단에서 훈련을 한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한 달 전엔 북파공작원이 훈련했던 HID에 다녀왔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여자선수들은 기절 직전까지 갑니다. 남자선수들도 팬티에 오줌을 쌀 정도니까요.

 

올림픽 한두 달 전에는 경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선수가 많습니다. 그럼 우리는 선수들을 서부 최전선 부대에 데려갑니다. 군복 입고 철모 쓰고 실탄 지급받고 GOP로 들어가 경계근무를 서게 되죠. 이걸 왜 하느냐. 밤새 자기성찰 시간을 가지면서 복잡한 머릿속을 단순화하자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이 훈련을 하고 나면 정말 머릿속이 단순해집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잠도 잘 자거든요. 그러다 또 생각이 복잡해지면 다시 집어넣습니다.(좌중 웃음)

 

그런데 지도자들은 뒷전에서 놀며 “야, 너희들 갔다와” 이러면 선수들이 제대로 하겠습니까? 지도자들도 똑같이 군복 갈아입고 들어갑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양궁 훈련들은 지도자가 먼저 시범을 보이거나 함께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선수들에 번지점프 시범 보이느라 감독이 9번 뛰어내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기 전 선수들을 충주호에 있는 65m짜리 번지점프대에 데려갔습니다. 좀전에 제가 뭐라고 했죠? 가장 먼저 지도자가 시범을 보여야겠죠? 그렇게 시범을 보이고, 그 다음에 선수들을 뛰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 여자선수가 뛰지 못했습니다. 감독이 30분간 그 선수를 설득했습니다. “다 뛰는데 너는 왜 못 뛰느냐. 너는 능력도 있고 배짱도 있다. 못하는 건 결단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만약 올림픽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맞닥뜨리면 어떻게 할 거냐. 해봐라. 넌 할 수 있다….” 온갖 감언이설로 설득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이번엔 감독이 다시 뛰었습니다. 뛰고 내려와서 또 30분간 설득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감독이 올라가서 다시 뛰어내리고…. 그런 식으로 충주에 간 첫날 감독은 아홉 번이나 뛰어내렸습니다.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선수의 소속팀 감독에게 연락해 올라오게 했습니다. 선수와 소속팀 감독 그리고 대표팀 감독 이렇게 셋이 또 충주호에 갔습니다. 이번엔 두 감독이 그 선수를 설득했습니다. “너는 뛸 수 있다” 이렇게 끝까지 힘을 북돋워 준 겁니다. 그래도 못 뛰잖아요? 그럼 이번엔 소속팀 감독과 대표팀 감독이 함께 뛰어내립니다.

 

나중엔 말이죠. 감독들이 “제발 나 좀 살려줘”라고 통사정합니다. “선생님이 불쌍하지도 않냐. 이게 며칠째냐?” 소속팀 감독은 또 무슨 죄가 있습니까? 국가대표 선수 길러낸 죄밖에 더 있습니까? 불려와 덩달아 뛰는 겁니다. 사흘째 되던 날, 두 발을 땅에 딱 붙이고 있던 선수가 갑자기 “으아~” 소리치며 일어나더니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하며 번지점프를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뛰어내려 성공한 겁니다. 거기 한 번 뛰는 데 4만원이더라고요. 첫날에만 감독이 아홉 번 뛰었는데, 다섯 번 뛴 것만 돈을 받았습니다.(좌중 웃음) 그걸 보면서 선수가 얼마나 미안했겠습니까. 그 선수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뛰었을 겁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선수였거든요. 그 선수에게 “두어 번 더 뛰어내리자”고 해서 두 번 더 시켰습니다. 결국 그 선수가 독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훈련 중에 천호대교에서 63빌딩까지 걸어가는 게 있습니다. 약 26km 거리입니다. 가장 추운 1월 중순, 밤 12시 반에 출발해 최대 속보로 가면 보통은 아침 7시경 63빌딩에 도착합니다.

 

지난해 12월20일에는 제주도에 갔습니다. 밤 9시에 앞뒤 사람 간격을 1km로 두고 출발해 1100도로를 거쳐 중문, 서귀포로 해서 표선까지 걸었습니다. 11시간 걸렸습니다. 표선에 도착해 오전 11시경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선수들을 버스에 태워 관광을 시키는데, 이게 실은 선수들 잠 못 자게 괴롭히는 겁니다. 밤새 걸었기 때문에 차에 태우면 얼마나 잠이 오겠습니까? 잠이 들 만하면 “하차!”, 찬바람 맞고 잠 다 깨면 5분쯤 뒤에 “승차!” 이렇게 온종일 계속하면 남자든 여자든 반은 미쳐버립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왜 화를 못 내는지 아십니까? 지도자든 감독이든 자기들과 똑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감독이 자기는 잠자면서 선수들에겐 “야, 내렸다 타” 이랬다면 쿠데타가 나도 몇 번은 났을 겁니다. 똑같이 하니까 화도 못 내고, 자신에 대한 울분만 풀어내는 겁니다. 그렇게 돌다가 22일 새벽 4시에 다시 표선에 도착했습니다. 30분간 밤참 먹고, 새벽 4시40분부터 다시 걸었습니다. 앞뒤 사람 1km 간격으로 세워 한라산 정상까지 갔습니다.

 

 

끊임없이 위기의식 주입 … 칼날 위에서 근성으로 살아남기


당시 최연소 선수가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우리가 표선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왔는데 한라산을 3분의 2쯤 올라가니 눈보라로 바뀌어 앞이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 어린 선수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엄마, 엄마” 하면서 막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치들이 옆에 붙어 “하나 둘, 하나 둘”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어린 선수도 결국 한라산 정상까지 갔습니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이 잠 한 숨 안 자고 무박3일 훈련을 소화해낸 겁니다.

 

우리 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합니다. 동쪽의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양궁의 성공이 과연 타고난 기질 덕분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양궁의 성공은 뼈를 깎는 노력과 치밀한 전략의 결과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가장 조화로운 분위기에서 최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겁니다. 서로 강점을 인정하고 약점을 보완하면서 성취를 이뤄가는 것이 함께 성장하고 승리하는 윈-윈 파트너십입니다. 개인이 좀더 나은 삶의 질을 창출하려 노력할 때 자기가 몸담은 조직도 글로벌 조직으로 커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동반자 정신,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양궁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수가 너무 힘들다 보면 “그래, 나 하나 금메달 포기하면 되지” 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선수 개인이 금메달을 놓친 게 아니라 대한민국 양궁, 나아가 우리 한국 선수단이 금메달을 놓친 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의식과 동반자 정신이 필요한 겁니다.

 

오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남은 인생의 첫날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죠. 그래서 우리 선수들에게 늘 말합니다. 매순간 살아가는 의미와, 무엇이 돼야 하고 무엇을 이룰 것인지를 생각해보라고 말입니다.

 

살다 보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도 모레 같고…,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차’ 하면 누구나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실패한 삶입니다.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저는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세 가지를 부탁합니다. 첫째, 매순간이 승부다. 둘째, 우리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그러니 프로정신과 프로 근성으로 살아라. 셋째, 적어도 조직을 관리하는 리더라면 자기가 있어야 할 그 시간에 바로 그곳에 있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약 10년간 운동선수로서의 인생에 마지막 승부수를 펼칩니다. 단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질 뿐입니다. 두 번의 올림픽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10년간 집중해서 파고들면 다들 경지에 오릅니다. 그런 꿈과 희망을 갖고 인생의 승부를 거는 겁니다.

 

오늘 제 얘기가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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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ve seen countless attempts to re-invent the Post-It note, but no one's ever really managed to improve on the basic design -- which might be why MIT's "Quickies" concept doesn't even try. The electronic note system is instead based around a digital pen and special pad, which saves your notes as you jot them down on RFID-embedded Post-Its. Software on your PC then does some quick OCR and, according to the inventors, "uses its understanding of the user's intentions, content, and the context of the notes to provide the user with reminders, alerts, messages, and just-in-time information." Since the database can also store location information, sticking the note on a book or other object allows you to locate it later using the RFID tag, and you can even have notes SMS'd to their recipients. Pretty wild -- but we're more impressed someone finally found a good use for all those digital pens out there. Check a video of the system in action after the b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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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dual-core confirmed, uses just 8W?

Intel's rumored Atom 300 dual-core chip is authentic and will quickly appear soon, Fudzilla claims in a new but seemingly authentic leak. While less ambitions than the 1.87GHz chip originally suggested in one version of Intel's roadmap, the 1.6GHz Atom 330 processor should otherwise represent twice the theoretical performance with each physical core adding Hyperthreading support, effectively supporting as many as four distinct program threads under ideal circumstances. The Level 2 cache is also doubled to 1MB.


Power continues to be a strong point, the leak suggests: the extra core isn't believed to boost power consumption above eight watts, or just a fraction of the power use of Intel's normal portable chips and significantly less than its low-voltage models. The energy usage is too high for handheld devices but should be suitable for very small notebooks.

A launch for the range-topping Atom is reportedly scheduled for the summer, though whether this will include the 1.87GHz chip or other variants is still unclear. However, Intel is expected to launch its ultra-portable chip refresh in Sept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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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 박사.

우장춘 박사가 왜 아직도 "씨없는 수박 맹든 사람"으로만 알려져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것도 이승만의 저주인건가.

(게다가 씨없는 수박은 기하라 히토시라는 이름의 일본인 박사가 처음 만들었고 그걸 우 박사가 한국에 들고 온거다. 뭔 넘의 "씨없는 수박 박사"...)

짧게 요약하자면,

우장춘 박사는 일제와 전쟁이 말아먹은 불모지 쑥대밭 한반도를 먹고 살만한 땅으로 바꿔 놓은 구국의 위인.

이분은 출생부터가 기구하셨다.

1898년 생인데, 아버지가 친일부대의 대대장으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역적 우범선이었다.

아관파천으로 전세 역전, 일본으로 망명한 '친일파' 우범선, 일본인 사카이 나카와 결혼해 2남을 생산하는데 그중 장남이 우장춘이었다.


우장춘(가운데) 가족 사진.
아버지 우범선(왼쪽)의 죽음으로 이 가족은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진다


조국을 배신한 역적의 최후는 비참했다. 우범선의 증언에 따르면 억울한 면도 있다는데 뭐 어쨌든. 우범선은 우장춘의 나이 5살에 대한제국이 보낸 자객에 살해된다.

이때부터 우장춘 가족은 그야말로 떠돌이 집시만도 못한 최악의 삶을 살게 된다.

조선에선 배신자 역적의 가족, 일본에선 이용가치 없는 쓰레기 튀기 가족으로 전락,

과부가 된 장춘의 어머니는 극심한 경제적 비곤에 시달려, 우장춘을 고아원에 맡겨 버린다. 그리고, 무슨 동화책 속의 주인공마냥 조선인 우장춘은 고아원생들의 무지막지한 이지매 공격에 시달린다.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 가난하고 힘들고 폭력에 시달리다 크면 나중에 일탈행위를 하기 마련인데 우장춘은 그 반대였다. 그는 '기어코 훌륭한 사람이 되서 너희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뭐 어쨌든, 장춘의 어머니도 훌륭한 여인었던 모양. 기어코 돈을 벌어 장춘을 집으로 데려와 대학까지 보낸다. 것도 그냥 대학이 아니라 동경제국대학을. 명문대 간건 장춘이 대단해서였지만 아무튼.


일본 제국주의과 우장춘의 복수심

도쿄제국대학 농학실과을 졸업한 장춘, 일본 농림성에 취업해 혁혁한 업적을 쌓으며 승승장구한다. 근데 1937년 어느날 갑자기 해임.

왜? 일본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춘이 일본에서 살아남는 길은 일본인이 되서 일본 이름을 쓰는 것 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는 결혼하려고 일본인의 양자가 돼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라는 일본 이름을 얻었다. 근데 정작 자신의 업적을 남기는 논문과 공문 기록에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한국 성인 "우"를 집어 넣었다.


우장춘 선생님 대학 시절 모습

우장춘에게 일본은 혹독한 굶주림과 차별과 폭력의 나라였다. 일본에서 이민자가 얻을 수 없는 엄청 높은 지위를 얻긴 했으나 그건 순전히 장춘이 혼자 잘나서 그렇게 된 거고. 자신의 가족을 그토록 짓밟았던 제국주의에 미쳐 날뛰는 나라, 일본은 우장춘에게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할 적국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에 매달렸다. 괴롭게도 조선은 우장춘을 역적의 아들로 낙인 찍었으나, 여전히 조선은 그의 뿌리이자 (자신처럼) 일본에게 짓밟힌 약자였다.


우장춘의 귀환

해임 후 지방의 농장장으로 재취업, 연구 활동에 몰두하던 우장춘은 여생을 그냥 그렇게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육종학계 최고 권위자라는 명예를 간직한 채 일본 이민자 역사에 빛나는 태양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장춘에겐 운명이 정해준 사명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선, 아니 대한민국이 그를 애타게 찾기 시작한 거다.

해방 후 대한민국은 1947년부터 농업의 근대화를 위해 일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실력자 우장춘을, "같은 민족"이라는 미끼로, 영입하고자 했다.

당시 한국은 미리 한국 농업 과학연구소를 만들어 놓고 소장 자리를 우장춘을 위해 공석으로 놓아 둘 정도로, 우장춘의 가족에게 "이적료"로 1백만엔을 보낼 정도로 열성이었다. 당시 1백만엔이면 '남편이 죽었어요 10억을 받았어요' 수준의 엄청난 돈.

우장춘은 이미 골수 깊은 민족주의자였는지도 몰랐다. 난 조선에서 죄인이겠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조선이 먼저 "어서오쎄요"라고 걸보고 무척 감격했던게 분명했다.

그는 가족을 위해 쓰라고 준 돈 1백만엔을 탈탈 털어 한국에 심을 종자를 사는데 사 써 버렸다. 그리고 당시(1950년) 한국 전쟁이 한참이었던 부산에 와서 그 나이에 군복무까지 했다. 당시 높으신 양반들은 군면제시켜 주려고 했는데 우장춘은 싫다고 했단다. 허허...


구원자, 우장춘

암튼, 공석으로 남겨뒀던 한국 농업 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우장춘. 근데 소장이면 뭐하니. 전쟁으로 쑥대밭된 나라엔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연구소는 소장 자리만 만들어 놓고 잠 잘 곳도 씻을 곳도 수돗물 나오는 곳도 전기 들어오는 곳도 안 만들어 놓았단다. (심지어 입을 옷도 없어서 우장춘 소장은 행사장에 누더기 외투에 고무신 끌고 나가셨단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 10 여년 동안 우장춘은 대한민국을 기어코 구원하시고야 마는데, 그 업적의 핵심은 바로,

우량 종자 개발.

농업만 그랬겠냐만은 일제 치하의 조선은 철저하게 일본에 종속된 '식민농업지'였다. 일본에서 종자를 들여와 일본식 기술로 농사를 지어야 했는데, 일본이 패망한 뒤로는 그게 불가능해 진 거다.

식량조차 자급자족이 안되는 나라, 이 처절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수 종자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식량 작물은 키워 놓으면 지가 알아서 씨를 틔워 번식하는게 아닌 모양이었다. (난 영농기술에 잘 모르니 원) 인공적으로 종자를 개발해야 생산성이 높아지고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있었던 모양.

우장춘은 가장 먼저 우량 종자 개발에 주력, 최단시간 내에 배추, 무, 고추, 오이, 양배추, 양파, 토마토, 수박, 참외 등에 걸쳐 20여 품종에서 종자를 확보한다. (그 외에도 한해 두번 수확하는 벼 품종 개발 등 무수히 많단다)

이로서 대한민국에 현대 농업기술이 시작됐고 국민들은 기아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장춘이 손을 댄 우량 종자들은 외국 것을 능가하는 엄청난 품질이었다.

우장춘이 얼마나 천재였는지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바로 제주 감귤이었다.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최우수 과일 품종 "제주 감귤." 이 엄청난 작물의 종자와 재배 기술을 창작해 낸 것도 모자라, 우장춘은 이걸 제주와 남해안 일대에 생산지를 구축, 제주 감귤 산업을 일으켜 세우셨다.

이것만 있냐, 아니다 . 강원도 감자 있잖수. 이거이 특정 바이러스에 너무 취약해 한번 창궐하면 전멸을 하곤 했단다. 그때마다 강원도민들의 상당수는 굶어죽는 거였고. 이걸 종자를 변형시켜 면역을 가진 강력한 작물로 탈바꿈 시켰다.

그리고 페튜니아를 화초로 가꿀 수 있도록 개발해서 원예 산업을 일으켜 세웠고... 이건 일본에서도 깜짝 놀랐던 엄청난 업적이라는데 내가 잘 몰라서 그냥 패스.


페튜니아 교배 연구 중인 우장춘 선생님

우장춘 박사는 먹고 사는 것만 해결해 주신게 아니라 먹는 걸로 경제와 산업을 창출하는 기반까지 닦아 주신... 그 당시엔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천사였던 거다.


영웅의 수난

처음에 한국에 오실 때 우장춘 박사는 한국에 뼈를 묻겠다고 하셨다는데, 솔직히 그게 사실인지는 알수가 없다.

솔직히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라도 별로 뼈를 묻고 싶은 나라는 아니었을게다.

우장춘 박사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위해 온몸을 산화한 영웅이었다. 십이지장 궤양으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그 때 한참 실험 중이던 일식이수(一植二收)의 벼를 비닐 봉투에 넣어 링거병이랑 같이 걸어 놓고 관찰할 정도였다.

근데 이승만과 그의 떨거지들은 우장춘을 우습게 여겼다. 왜냐, 우리말을 잘 못했거든.

당시 정신나간 권력자들은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활활 불타고 있었고, 일본말만 잘하는 우장춘을 밉게 보았다. 우장춘 박사는 사실 한글에 도통한 분이었다. 왜 그런 사람 있잖수 영어 읽기 듣기 쓰기 다 잘하는데 말하기만 젬병인 사람. 우장춘이 그랬다. 다 잘하는데 한글을 구사하는 것만 못했다.

그래서 아예 대놓고 구박하고 모욕을 줬다. 아예 공개석상에서 일본말만 지껄일 중 알면서 무슨 애국을 하겠다며 망신을 준 정치인도 있었다.

세계적인 유전학 석학이 한국에 오니까 졸지에 외국인 노동자 된 거다. 이 때부터 그 잘난 대한민국의 처절한 과학자/엔지니어 냉대 전통이 시작된 거라는 거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머니가 작고하셨을 때도, 딸이 결혼을 했을 때도 우장춘은 일본으로 건너가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이 출국 금지를 시켰걸랑.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평소 바른 말을 잘하는 우장춘이 이데올리기 문제에 관해 입바른 소릴 한 모양이었다. 그 소릴 들은 이승만 정권은 '사상에 문제가 있네'라며 그를 출국 금지시켜 버렸다.


한국 땅에서 어머니의 제사를 치르고 있는 우장춘 선생님

어머니의 죽음, 딸의 결혼도 함께 하지 못한 우장춘. 아들로서 아비로서 가슴 찢어지는 고통이었겟지만,

그러나 우장춘은 끝까지 조선인을 위해 마지막 생을 바쳤다.

그는 1959년 죽는 순간까지 더 우수한 벼 품종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시키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한다.

죽기 하루 전 정부로부터 문화 포상받은 우장춘,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철철 흘렸다고 한다.

"조국이 날 인정했구만... 근데 좀 일찍 좀 주지..."


한국 원예연구소 재임 당시의 우장춘 선생님
한국의 모든 전후 세대는 이 위대한 인물에게 큰 빚을 졌다

이승만 정권은 우장춘을 철저히 이용만 해 먹었다. 그들은 우장춘의 업적을 기록에 남기는 것조차 소홀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구국의 영웅이자 만능 천재 과학자 우장춘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거다.

50여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서점에서 책을 찾아도, 우장춘에 관한 콘텐트는 코흘리개 애들 교과서 한귀퉁이에 실릴 정도의 분량 밖에 나오지 않는다.

되려, 일본에서 출판된 책이 우장춘의 생애에서 대해 잘 정리해 놓았다.

일본 여류 작가 쓰노다 후사코의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라는 책. 이 책이 요즘 우리가 접하는 우장춘 박사에 대한 모든 정보의 소스원이다. 아래 링크에 책 정보가 있다.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5000131723


출처 : 돌연변이연구소 http://kr.blog.yahoo.com/fastidio4/MYBLOG/yblog.html?fid=0&m=lc&sk=0&sv=%EC%9A%B0%EC%9E%A5%EC%B6%98&frommode=c#124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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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얼굴 주름으로 담배 구매연령을 인식하는 자판기를 곧 실용화 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담배를 필 수 있는 법적 연령은 만 20세로, 오는 7월에 얼굴 형태를 분석해 나이를 맞추는 후지타카 사의 새로운 시스템을 장착한 담배 자판기를 일본 전역에 걸쳐 570,000 대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 자판기에는 눈가의 주름들, 두개골 형태, 피부의 처진 상태 등 얼굴의 특징들을 100,000명 이상의 얼굴 데이터와 비교하는 디지털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이는 미성년자들이 신분증을 빌려 담배를 사는 폐단을 방지할 것이라고 후지타카 사의 대변인은 말했다. 그러나 이 얼굴인식 방법의 정확도에 대한 염려들도 제기되어, 인준이 미뤄지고 있다.
이 대변인은 이 시스템이 사용자들의 약 90%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나머지 10%의 늙게 보이거나 동안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는 운전면허를 기계에 넣어 재차 확인하도록 요구한다고 말했다.
일본 보건성은 법적 미달 연령 흡연율이 일본에서 감소하고 있지만, 2004년 조사에 의하면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들의 13%와 여학생들의 4%가 매일같이 담배를 피고 있다고 알려졌다.

[소스] http://www.i4u.com/article171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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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of September 2007, Nintendo has sold over 13 million Wii game consoles. This significantly exceeds the number of Tablet PCs in use today according to even the most generous estimates of Tablet PC sales. This makes the Wii Remote one of the most common computer input devices in the world. It also happens to be one of the most sophisticated. It contains a 1024x768 infrared camera with built-in hardware blob tracking of up to 4 points at 100Hz. This significantly out performs any PC "webcam" available today. It also contains a +/-3g 8-bit 3-axis accelerometer also operating at 100Hz and an expandsion port for even more capability. These projects are an effort to explore and demonstrate applications that the millions of Wii Remotes in world readily support.

Any software on this page is primarily meant for developers and may not run without proper the development tools installed. Downloading and installing this software is at your own risk, and no support or guarantee is provided with this software. The official discussion forums for my wiimote projects can be found here: WiimoteProject.com

NOTE: For most of these projects, you don't need the Nintendo Wii console. You only need the Wii controller and a bluetooth connection.

Tracking Your Fingers with the Wiimote

Using an LED array and some reflective tape, you can use the infrared camera in the Wii remote to track objects, like your fingers, in 2D space. This lets you interact with your computer simply by waving your hands in the air similar to the interaction seen in the movie "Minority Report". The Wiimote can track upto 4 points simultaneously. The multipoint grid software is a custom C# DirectX program.

Software
To run the grid program you see in the video:
1. First, follow this walkthrough on using the wiimote with C#. You may need to download a copy of Visual C# Express to compile/run this sample if you don't have it yet.
2. Download a copy of the DirectX SDK. You may not need this to simply run the sample grid program, but you will need it if you want to make any changes to it.
3. Download the Wiimote Multipoint Grid sample program. Make sure your wiimote is connected via bluetooth, and then run the ".exe" shortcut in the main folder.

A visit to this project's FAQ and Advanced Discussion post may be very englightening. You may also find the official discussion forums for my wiimote projects helpful: WiimoteProject.com




Low-Cost Multi-point Interactive Whiteboards Using the Wiimote

Since the Wiimote can track sources of infrared (IR) light, you can track pens that have an IR led in the tip. By pointing a wiimote at a projection screen or LCD display, you can create very low-cost interactive whiteboards or tablet displays. Since the Wiimote can track upto 4 points, up to 4 pens can be used. It also works great with rear-projected displays.

Software
The calibration and mouse cursor emulation software is available for you to download and try yourself. Note: My mouse emulation code isn't perfect. If any of you are programmers and can get it working with Alias Sketchbook, drop me a line.
1. Connect your wiimote to your PC via Bluetooth. If you don't know how to do this, you can follow this tutorial. I've been told it works with other Bluetooth drivers, but I have not tested them myself. You can report compatibility issues on the SourceForge:WiimoteWhiteboard - Help Forum
2. Download the Wiimote Whiteboard software to the right. Please read the "READ ME.txt" file first! Make sure your wiimote is connected via bluetooth, and then run the ".exe" in the main folder. NOTE: Good placement of the wiimote is key to good tracking. View the README for more info.

Multitouch: The multitouch demos are custom C# DirectX programs. You may download the sample program to the right, but this is provided for developers without support or documentation. The code is built on top of this Wiimote library. Unfortunately, multi-touch capable applications are currently extremely rare. Hopefully, that will change as more developers explore its potential.

Building pens: Here is a simple schematic of the light pen. The LEDs that I use are Vishay TSAL6400s running at 100mA, but lots of other LEDs will work too. You also might be able to jump start your experimentation by retro-fitting a mini keychain light with an IR LED. I'm currently looking into manufacturing and selling IR pens, but this may take several months.

Mac/Linux Versions: Due to personal time contraints, I've had to hand off Mac and linux development to other members of the Source Forge Project - Wiimote Whiteboard. Check there if a release has been made. If you are a Mac/Windows/Linux developer, please help spread the love and join the project. A lot of people are waiting to use your software.You can subscribe to updates at my Project Blog [procrastineeri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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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wnloads:
Wiimote Whiteboard (original 12/19/07) - includes source
Wiimote Whiteboard v0.2 (updated 3/27/08) - includes source

Multitouch source code





Head Tracking for Desktop VR Displays using the Wii Remote

Using the infrared camera in the Wii remote and a head mounted sensor bar (two IR LEDs), you can accurately track the location of your head and render view dependent images on the screen. This effectively transforms your display into a portal to a virtual environment. The display properly reacts to head and body movement as if it were a real window creating a realistic illusion of depth and space.

The program only needs to know your display size and the size of your sensor bar. The software is a custom C# DirectX program and is primarily provided as sample code for developers without support or additional documentation. You may need the most recent version of DirectX installed for this to work.

Software
To run the DesktopVR program you see in the video:
1. Connect your wiimote to your PC via Bluetooth. If you don't know how to do this, you can follow this tutorial. I've been told it works with other Bluetooth drivers, but I have not tested them myself.
2. Download the WiiDesktopVR sample program. Read the README file on program usage and configuration. Launch the "WiiDesktopVR.exe" in the main folder. A potentially more stable/Vista/64-bit compatible version has been created by Andrea Leganza. There also may be more variants on the web.

NOTE: If you are having trouble with running the program, you can check my project blog post about it or check the forum for assistance. I am unable to replicate these problems, so it hard for me to debug them. But, other people have figured it out. Things that have been identified to help: delete the "config.dat" file and re-run the program, install a new version of Direct X, or istall .NET 2.0.

Developers Notes: The code is built on top of this Wiimote library. To compile the program, you will need a C# IDE and the DirectX SDK. More notes are in the READ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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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 Later: 3D tracking, and more....

Unfortunately, time constraints in the next couple of months have significantly reduced my ability to work on more projects. But, you can subscribe to updates via my project blog [procrastineer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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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으로 낭비되는 에너지가 아깝다면

'SBS 스페셜', 23일 밤 '인간 동력' 활용 사례 등 조명

2008년 03월 23일 (일) 15:23:50 권경성 기자 ( ficciones@mediatoday.co.kr)

고유가와 지구온난화, 그리고 비만. 현 시대의 전 세계적인 '삼중고'다. 이를 일거에 해결할 '일석삼조'의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휴먼 파워'다. 사람의 운동은 제 몸에 축적된 잉여 지방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로 변환돼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면서도 전기를 만들어내거나 자동차에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SBS TV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은 23일 밤 11시5분 '당신도 에너지다 인간 동력(人間 動力)'을 방송한다. 프로그램은 최근 새로운 대체 에너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인간 동력'에 대해 조명한다.

캐나다인 그레그 콜로지에직은 자신이 손수 제작한 인간 동력 보트를 타고 대서양을 40일 이내에 건넌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인간 동력이 자국인들의 심각한 건강 문제와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믿고 있다.

   
  ▲ <SBS 스페셜>은 23일 밤 11시5분 '당신도 에너지다 인간 동력(人間 動力)'을 방송한다. ⓒSBS  
 
그러나 인간 동력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힘들고 불편한 게 사실이다. 인간 동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뭘까. 프로그램은 "인간 동력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여야 한다"며 '플레이 펌프'를 사례로 든다. '인류의 요람'으로 별칭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마을에는 아이들이 빙빙 돌리면 물 펌프가 작동하도록 설계된 놀이 기구가 있는데 이게 플레이 펌프다.

지하 150m 깊이의 물을 1회전 당 1ℓ의 속도로 뽑아올리는 이 펌프 덕분에 물은 쓰고도 남을 정도로 얻는다. 또 아이들의 위생이 놀랍게 좋아졌고 텃밭에 채소도 가꾸게 됐으며 학생 수도 두 배로 늘었다.

플레이 펌프는 현재 아프리카 전역에 1000여 개 정도가 설치돼 있고 아프리카의 물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그램은 "물을 퍼올리는 힘든 노동을 즐거운 놀이로 바꾼 게 이 펌프가 성공한 이유"라고 분석한다.

미국 뉴올리언스 사우스웨스턴 대학의 라즈 판디안 박사는 전자 오락기를 변형한 발전기 세트를 개발 중이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도록 하면서 그 에너지를 전기로 만들 수 있다면 학교에서 사용하는 전력 정도는 충분히 아이들에게서 나온다는 게 판디안 박사의 설명이다.

김행봉씨는 6가지로 변환되는 페달이 달린 자전거를 만나면서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자전거 발명가 최인섭씨는 "자전거도 여럿이 함께 타면 즐겁고 더 오래 탈 수 있기 때문에 장거리 교통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전거는 인력으로 구동되는 차량으로까지 진화했다. 찰스 그린우드는 지난해 4인승 인력 자동차의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이 차량는 핸들 바와 페달을 결합한 독특한 동력 전달 장치를 사용해 시속 90㎞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지구의 날'인 다음 달 22일에는 최초의 휴먼 카 '이매진(Imagine)'이 출시될 예정이다.

   
  ▲ ⓒSBS  
 
데이비드 부처는 매일 아침 자신이 만든 발전기로 30분씩 운동하면서 하루에 50와트시(Wh)의 전기를 만들어오고 있으며 이것을 자동차 배터리에 충전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한다. 홍콩의 한 피트니스센터는 운동기구에 발전기를 달았다. 평소에 고객들이 운동하면서 낭비해버리는 에너지를 아깝다고 여기던 매니저가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겼고, 이렇게 생산된 전기는 조명과 TV 등에 사용된다.

프로그램은 이밖에 사람이 스위치를 누르는 힘으로 작동하는 무선 스위치, 신고 다니면 자동으로 휴대전화 배터리가 충전되도록 하는 '발전신발', 승객이 밟고 지나가면 발전이 되는 계단 등 인간 동력을 활용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제작진은 "인간 동력은 출력 면에서 엔진과 전력을 따라 잡기는 힘들지만 건강 문제와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 프로젝트때 참고할만한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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